고(故) 김하동 일병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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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하동 일병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 8월 31일(월), 6·25전쟁 당시 19세의 나이로 산화한 고(故) 김하동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경기도 용인시에서 거행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해 4월,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8사단 소속의 고(故) 김하동 일병으로 확인했다.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아홉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며,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 개시 이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277번째 국군 전사자다.
□ 고인의 유해는 지역 주민의 제보를 토대로 현장 투입된 국유단 전문 발굴팀이 발굴했다.
◦지난 2024년 3월 어느 80대 주민이 어릴적 국군 장병 7명이 중공군에게 잡혀가 밭에서 사살되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후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그 시신을 인근 야산에 매장했다고 제보했다.
◦한 달 뒤 국유단은 해당 제보를 기초로 전문 조사관을 현장에 파견해 제보자와 동행 조사를 실시하고 다른 마을 주민으로부터 추가 증언을 확보했다. 이후 매장 추정 지역의 토지소유주와 협의해 지난해 3월에 전문 발굴팀을 투입했다.
◦제보자의 증언대로 해당 장소에서 전사자의 유해로 추정되는 우측 부위의 무릎뼈-정강뼈-발목뼈-발등뼈로 이어지는 해부학적 연속성을 유지한 부분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 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2023년에 채취했으며, 지난 4월 유해-유가족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국유단은 제보 내용과 매장 환경, 유해의 연령대를 고려해 수습한 유해를 국군으로 추정하고 지난해 5월 유해의 일부분을 떼어낸 후 유전자 시료를 추출해 검사를 진행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고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2년 전인 2023년 10월 국유단 유가족 찾기 탐문관이 남동생 김하준 옹(1939년생, 당시 84세)의 거주지를 찾아 채취했으며, 같은 해 11월 유전자 분석을 완료했다.
◦이렇듯 기존에 분석을 완료한 유가족 유전자 자료가 있었기에 지난해 7월 수습한 유해에 대한 유전자 시료 분석을 마친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지난 4월 고(故) 김하동 일병과 김하준 옹(翁)이 형제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경상북도 경주시 출신인 고인은 1950년 11월 입대 후, ‘횡성전투(1951. 2. 5. ∼ 15.)’에서 전사했다.
◦고인은 1932년 1월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4남매(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큰형이 큰집에 양자로 가게 돼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했다. 학적부 상으로 경주중학교 1회 졸업생(1952년)으로 돼 있으나, 5학년(18세) 때 자원 입대했기에 실제로는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고인은 1950년 11월에 대구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1개월간 훈련을 받은 후 국군 제8사단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이듬해 2월 횡성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횡성전투는 중공군의 제4차 공세(2월 공세) 당시 국군 제3·5·8사단과 미 제10군단이 중공군 제39·40·42·66군 및 북한군 5군단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다. 이때 국군 8사단은 큰 피해를 입어 원주로 후퇴해 병력을 수습한 다음 다시 대구로 이동해 부대를 재편성했다.
□ 이번 귀환 행사는 유가족 뜻에 따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고인의 남동생인 김하준 옹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유가족 대표 김하준 옹(87세)은 “형님을 유전자 검사로 찾았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것을 새삼 느낀다”며, “형님이 돌아가시고 부모님께서 매일 장독대 뒤에서 눈물 흘리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어린 나이에 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울던 한이 이제 내려 앉는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를 주관한 전병희 국유단장은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확인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전병희 단장은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고인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앞으로도 호국영웅의 유해를 끝까지 수습하고,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등 역량을 집중해 남겨진 유가족분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부 24”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국유단은 전국 각지에 계신 유가족분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시료를 제공하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 참여가 어려운 분들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리고 있습니다. <끝>
□ 8월 31일(월), 6·25전쟁 당시 19세의 나이로 산화한 고(故) 김하동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경기도 용인시에서 거행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해 4월,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8사단 소속의 고(故) 김하동 일병으로 확인했다.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아홉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며,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 개시 이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277번째 국군 전사자다.
□ 고인의 유해는 지역 주민의 제보를 토대로 현장 투입된 국유단 전문 발굴팀이 발굴했다.
◦지난 2024년 3월 어느 80대 주민이 어릴적 국군 장병 7명이 중공군에게 잡혀가 밭에서 사살되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후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그 시신을 인근 야산에 매장했다고 제보했다.
◦한 달 뒤 국유단은 해당 제보를 기초로 전문 조사관을 현장에 파견해 제보자와 동행 조사를 실시하고 다른 마을 주민으로부터 추가 증언을 확보했다. 이후 매장 추정 지역의 토지소유주와 협의해 지난해 3월에 전문 발굴팀을 투입했다.
◦제보자의 증언대로 해당 장소에서 전사자의 유해로 추정되는 우측 부위의 무릎뼈-정강뼈-발목뼈-발등뼈로 이어지는 해부학적 연속성을 유지한 부분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 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2023년에 채취했으며, 지난 4월 유해-유가족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국유단은 제보 내용과 매장 환경, 유해의 연령대를 고려해 수습한 유해를 국군으로 추정하고 지난해 5월 유해의 일부분을 떼어낸 후 유전자 시료를 추출해 검사를 진행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고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2년 전인 2023년 10월 국유단 유가족 찾기 탐문관이 남동생 김하준 옹(1939년생, 당시 84세)의 거주지를 찾아 채취했으며, 같은 해 11월 유전자 분석을 완료했다.
◦이렇듯 기존에 분석을 완료한 유가족 유전자 자료가 있었기에 지난해 7월 수습한 유해에 대한 유전자 시료 분석을 마친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지난 4월 고(故) 김하동 일병과 김하준 옹(翁)이 형제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경상북도 경주시 출신인 고인은 1950년 11월 입대 후, ‘횡성전투(1951. 2. 5. ∼ 15.)’에서 전사했다.
◦고인은 1932년 1월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4남매(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큰형이 큰집에 양자로 가게 돼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했다. 학적부 상으로 경주중학교 1회 졸업생(1952년)으로 돼 있으나, 5학년(18세) 때 자원 입대했기에 실제로는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고인은 1950년 11월에 대구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1개월간 훈련을 받은 후 국군 제8사단으로 배치받았다. 이후 이듬해 2월 횡성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횡성전투는 중공군의 제4차 공세(2월 공세) 당시 국군 제3·5·8사단과 미 제10군단이 중공군 제39·40·42·66군 및 북한군 5군단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다. 이때 국군 8사단은 큰 피해를 입어 원주로 후퇴해 병력을 수습한 다음 다시 대구로 이동해 부대를 재편성했다.
□ 이번 귀환 행사는 유가족 뜻에 따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고인의 남동생인 김하준 옹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유가족 대표 김하준 옹(87세)은 “형님을 유전자 검사로 찾았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것을 새삼 느낀다”며, “형님이 돌아가시고 부모님께서 매일 장독대 뒤에서 눈물 흘리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어린 나이에 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울던 한이 이제 내려 앉는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를 주관한 전병희 국유단장은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확인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전병희 단장은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고인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앞으로도 호국영웅의 유해를 끝까지 수습하고,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등 역량을 집중해 남겨진 유가족분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부 24”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국유단은 전국 각지에 계신 유가족분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시료를 제공하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 참여가 어려운 분들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리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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