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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한번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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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세종대왕에 대하여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뭐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안다고 봐야죠..

적어도 우리나라에 다녀갔던 외국인들은 지갑 꺼내면 몇번씩 보는 인물이니...

태정태세문단세...여기서 4번째..그러니까 1392년 건국된 조선의 태정태세..4번째 임금(헷갈려서 ㅎㅎㅎ또 세어봤어요)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왕이랍시고 만원짜리에 떡~~하니 초상도 올려놓고 해서 뭐 울 엄마보다 더 자주 뵙는 분이고..

가장 유명한 한글(훈민정음)창제부터 시작해서 뭐 군사적으로는 김종서 시켜서 4군 6진 개척하고 (겨울비처럼 슬픈노래를...)

또 장영실 시켜서 뭐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 벽시계 전자시계 등등..안 만든것도 없고...

박연 시켜서 아악까정 정리를 하니.. 역사에 이보다 훌륭한 분이 또 어디 있을까요...

(참..여기서 박연은 음악가가 아니라 명문대가 집 자식인데 어쩌다보니 아부지 말 안듣고 자꾸 그길로 나갔습니다..나중에 언급합죠^^)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세종이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입니다...넷째도 있는데 걔는 어려서 존재감이 영^^ ..성녕대군입니다)

그런데 첫째인 양녕과 둘째 효령을 제치고 어찌 왕이 되었을까요...

 

정사에는 이런 대목이 언급됩니다...

유동근과 최명길이...아참..이거 아니구나...

태종과 그 왕비인 중전 원경왕후가 이런 대화를 하게되는데 마침 문안인사를 드리러 온 양녕이 우연히 엿듣고...

내용인 즉슨...

태종 :  여보 말야...내가 아무리 봐도 말야...셋째 그놈이 똘똘한데 말야...음음...

원경 : 그런들 어째요..원래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하니 뭐 그냥 밀어 붙입시다...

태종 : 음..끗발이 안 좋으면 자리를 바꾸면 안되겠나??

원경 : 아니 자리 잘못 바꿨다가 또 몇명이 죽어나갈라고요...당신이 그것 때문에 시아주버님과 시동생 몇명 보냈는데...

태종 : 어허~~!!여기서 그얘기를 왜...험험~~

 

아무튼 정사에는 이렇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양녕이 총명한 아우를 위해 왕위를 양보하게 되었다...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어차피 역사는 정당성 즉 당위성을 부여해야만 하므로 그렇다치고...

 

뒷 얘기는 이렇습니다...

 

세자...

이거 참 불편한 자리입니다...

권력이란게 원래 차기...뭐 이인자...

이런거 절대 허락하지 않는 것이니...

그래도 대권을 물려준 아들이니 자리는 그럴듯 하나...

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게 이 세자이고...

또 누군가 샤바샤바 해가지고 세자를 앞세워 반란이라도 한다는 소문만 나도...

(조선 시대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바로 낙마에 귀양에 줄줄이 비엔나처럼...

그리 되는것이지요...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

양녕이 맨날 공자왈 맹자왈 하다가 결국은 탈선청소년(?)이 되고 맙니다...

맨날 밖에 나가서 활쏘기 하고 또 여자들 만나서 집에 잘 안 들어오고...

조선시대도 첩보능력은 그런대로 괜찮아서 왕한테 다 보고 들어갑니다...

태종도 처음엔 그러려니 지켜만 보았지요...주로 달래는 식으로 훈계만 합니다...

 

그러나 고민은 깊어만 가지요...

자신을 이어서 왕이 될놈이 맨날 개차반처럼 하고 다니니...

이건 뭐 왕위 물려주면 동네 양아치들 마담들 전부 궁궐에 들어와서 친한 척 할 판이니 이거 원...

형제들 죽여가면서까지 쟁탈한 왕좌인데 쉽게 무너지는걸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폐세자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당시 쟁쟁한 신하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작 중요한 말은 서로 입밖에 담지 못합니다...

왕은 미우나 고우나 제 자식이니 함부로 말꺼냈다가 세자의 목숨을 보장 못할 상황이고...

신하들 입장에서도 왕한테 폐세자 얘기 꺼냈다가...

만약에 그리 안되고 세자가 왕위 받으면...끈 떨어진 빤~~쓰 되서 아오지 탄광 가는 것이니..이것 참...

 

이러던 차에 1415년 12월 말경...

충녕(세종)은 의령부원군 남재란 자와 술자리를 갖게 됩니다...

근데 그자리에서 남재가 큰 무리수를 두지요...

예전에 태종이 잠저에 있을때 자신과 나누었던 말을 꺼내며...

(잠저란..왕이 되기전에 궁 밖의 사가를 얘기합니다)

지금 충녕이 딱 학문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뭘로보나 왕의 재목이라고 말합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이거 잘못하면 목 달아날 큰일이지요...

근데 더 골때리는건...

보통 대군들같으면 자신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며 펄펄 뛰겠는데...

(상다리 뒤집고 난리 났겠지요..목숨이 바로 날아갈 수 있으니...)

충녕은 그 술자리 끝나고 아버지인 태종에게 가서 그렇게 사실대로 말해버립니다...

 

태종이 듣고는 허허허...그 노인네가...하고 크게 웃어버리구요...

사실 자신의 생각과 같고 또 뭐 틀린 말이 아니니 문제 삼으려 하지 않았을것이라 추측합니다...

당시에는 왕도 궁중 사람들 신하들 그리고 충녕...모두가 양녕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여기서 발단이 되어 충녕이 공격을 시작합니다...지 형에게...

대략 한 열흘 정도 후인 1416년 새해 벽두에...(1월9일)

양녕이 충녕에게 명나라 스탈로 한 벌 뽑았다고 옷자랑을 하다가...

사람들 다 보는데서 개 망신을 당합니다...

형에게 조선의 세자가 그게 뭐하는 거냐고 학문을 정진하고 나서 뭐 어쩌구저쩌구...

이렇게...공격은 시작 되었습니다...(대선운동 네거티브 작전 인가요..ㅎㅎ)

 

아무튼 남재를 만나기 전과  그후의 충녕은 완전 180도 바뀌게 됩니다...

지지율 1위인 양녕이지만 서서히 불안해 지기 시작하고...(옆에서 또 측근들이 얼마나 펌프질 했겠습니까..ㅎㅎ)

망신 당한 후 한달여 뒤...양녕은 동생인 충녕을 까대려고 아버지에게 갔다가 오히려 혼만나고 돌아옵니다...

이래서 대신들도 왕의 마음을 눈치채고 서서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지요...

 

한 달 보름 뒤 또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인덕궁에서 태종의 형..즉 상왕인 정종과 태종..그리고 세자 및 왕자들이 모여서 연회를 벌입니다...

부어라 마셔라...가 끝나고 당시 동석했던 칠점생이란 기생을 양녕이 데리고 따로 가려고 하다가...

충녕한테 딱 걸렸습니다...

 

충녕 : 형님..지금 뭐하자는 시추에이션..??

양녕 : 아니 동생..내가 뭐 어쨌다고..

충녕 : 아니..그 여자 건들면 안되는 여자잖아요..알면서...

양녕 : 아니 동생 뭐 어때..이런데 놀다가 2차가는 거 뭐 자연스러운...

 

그렇습니다...

칠점생이란 여자는 태종의 부마(사위)였던 청평군 이백강이 예전에 데리고 있던 여자였습니다...

충녕은 그 부분을 문제 삼은거지요...

조선이 아시다시피 건국이념으로 유교를 택했으니...처남 매부가 한여자 끼고 다닌다...

이건 뭐 딱 좋은 꼬투리였습죠~~

 

세자를 대신할 카드가 없었다면 뭐 좀 부족하고 미워도 그냥 할 수 없이 가르쳐서라도 쓴다지만...

이건 뭐 히딩크급 대체자원이 눈에 보이니 참...

 

역사에는 양녕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일부러 자신이 낙마하기 위해서 탈선을 했다고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본다면 그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자신과 측근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니까요...

 

결국 양녕은 여자문제 또 못배운 티내고 건달들하고 다니고...

왕과 신하의 일방적인 의견 일치에 결국...

낙마하고 말게 됩니다...

 

수세에 몰렸을 때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목숨에 관한건 동생과 타협을 했겠지요...

세종 역시 아버지 대에 너무나 많은 피바람을 보았기 때문에...

언제든 화근은 잘라야 한다는 주변의 펌프질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전철은 밟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종이 된 충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매일 방안에서 공부만 한 샌님도 아니었고 어느정도 정치적 야심이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었으니 우리 역사가 조금 더 많은 유산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고 또 고유 우리글을 가질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히 되짚어 봅니다...

 

제가 감히 역사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손바닥의 양면인것 같습니다...

한쪽만 봐서는 그 온전한 실체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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