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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향녀(還鄕女)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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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환향녀(還鄕女)에 대하여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옛날 어른들이 화가나면 늘상 하던 욕설중에 화냥년이란 말이 있었지요...

그게 사실은 알고보면 우리의 슬픈 역사속에서 희생양이 되었던 불쌍한 조선시대 여자들의 명칭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약 931회의 외침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백의 민족이라고 칭하지요??

하지만 이것은 같다 붙여서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구요...

사실은 염색 기술이 부족해서 옷감을 염색하지 못해 그냥 명주실에서 나온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백의가 아니라 누리끼리 한 옷이지요...(돈있고 힘있는 양반들만 비단적삼을 입었습니다...)

 

사극에 보면 상인이 나오는게 몇개 있던데 그런곳에서 아마 드라마 소재로 다루었는지 모르겠네요..

옷감 밀무역이 참 많았거든요...

 

아무튼 그 침략중에 가장 큰 몇가지가 있는데 바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대표적입니다...

임진왜란의 원인은 일본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풍신수길이 남아도는 자국 무사들의 반감이 두려워...

시선을 나라 바깥으로 돌리어 그들에게 명분을 주려 저질렀던 침략인데...

(이것은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사실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두 장수가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입니다...

가등청정이 한양을 점령하면서 운종사라는 절에 묵으며 어느날 자신의 침소에 들일 여자를 부관에게 요구하고...

부관은  한양일대를 뒤져도 여자 그림자도 안보이자...

운종사의 여승들을 잡아다 겁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자신들도 여승을 겁탈한게 좀 걸렸었던 모양입니다)

운종사에 불을 지르고 가게되는데...

겁탈당한 여성들은 할수없이 인근 융경산 부군당 아래 토막을 짓고 살게 됩니다...

이를 어쩌나...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임신을 한 여승들이 생기고...

결국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됩니다...

그때부터 융경산 부군당 아래 토막집을 이태원(異胎院 : 다른 이, 즉 왜인의 아이를 벤 집) 이라 부르게 됩니다...

시간이흘러 명군과 조선 수군에 일본이 연패를 하고 의주로 피신한 선조일행도 한양으로 돌아오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불거집니다...

조선이 아시다시피 유교가 건국이념인지라...

15만 일본군이 쓸고간 자리에 나쁜 흔적이 남게되지요...

일본으로 잡혀간 여자들을 사명대사가 데리고 오는데 이게 1차 환향녀 입니다...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못받아들이겠다고 줄줄이 이혼 소송을 하게됩니다...

 

왕은 참 난감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 여자들 신병처리를 고민하다가 이태원에 구획정리를 좀 더해서 싹 몰아버립니다...

(이런거 보면 우리나라 남자들 근본이 참 못된면이 많습니다..)쪽팔리게...

 

인터넷 검색하시면 아마 정사에 기술한 내용으로 뭐 조선에 항복한 왜군이 모여 살았던 (이타인異他人)이

뭐 변형되서 그렇다느니 이렇게 나올겁니다..그러나 다 치부를 가리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지요..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바통을 광해가 받게되지요???

조선시대 유일하게 군의 칭호로 끝난 왕이 연산과 광해인데...

광해는 정말 고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인물입니다...

 

임진왜란으로 후금이 세력이 확장이되는데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낑겨서...

조선 조정이 골머리가 아픈데...

광해가 머리를 써서 기미책(일명 줄타기외교라고 할수 있습니다..)을 쓰게 됩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붙었다...(당시로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말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놈의 붕당정치...(조선의 최고의 악이지요...)

서인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광해를 몰아내려고 광해의 정책에 태클을 겁니다...

사대부정책..즉 대명을 숭배해야 하는데 기미책을 쓴다고 태클을 겁니다...

그래서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가 낙마를 하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것 때문에 그런게 아니고 대동법이라는 시책때문에 그런겁니다...

대동법은 잘 아시죠???

 

이리하여 시대적 흐름이 후금이 조선을 치자는 분위기로 갑니다...

군사를 이끌고 조선에 삥을 뜯으러 오는데...(사실 전쟁의 목적은 식량과 여자입니다)

의주땅부터 평양까지 휩쓸면서 여자란 여자는 모두 데려갑니다...(대략 60만명 잡혀갔는데 여자가 50만명 추산된다 합니다)

후금에 잡혀간 여자들은  몸값을 지불하고 조선으로 돌아오거나 압록강을 건너 탈출도 하고 심양으로 건너가 소현세자에게 살려달라고 읍소를 합니다... 당시 소현세자의 빈(강빈인가??정확히 기억은 안납니다)이 장사수완이 좋아서 그지역에서 인정을 받고 삽니다.

 

참 그놈의 유교사상...

이렇게 되돌아 온 여자들이 2차 환향녀 입니다...

이번에 역시 남편들이 대규모 이혼소송을 벌이게 되고...

인조는 왕권에 위협을 느끼게되어...(자신이 쿠데타 정권이라 도둑 제발 저린꼴~~)

 

임시방편이랍시고 만든게...

홍제동 아시죠??? 거기에 흐르는 냇물이 연신내...(옛날 명칭은 홍제원이었을겁니다)

청나라에 끌려간 여자들은 거기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다시 처녀로 나라에서 인정해 주겠다...

이런 되먹지도 않은 공표를 하게됩니다...

허나 누가 그걸 인정하려 하겟습니까...

자꾸 상소가 빗발치고 이혼소송이 남발하니...

그들을 달래기 위해서 화냥녀는 그냥 호적상 냅두고 첩이라도 둬서 기분내고 살아라고 권장을 합니다...

자신들의 정통성에 스스로 발등을 팍팍!! 찍어대지요...

그마저도 실패를 한 사례입니다...

 

대표적 일화로 인조당시에 영의정 장유란 자가 있었는데...

장유 며느리가 강화도로 피신갔다가 졸지에 잡혀가서 환향녀가 되어 돌아옵니다...

왕이 달래고 달래서 일단 데리고 있어봐라 하는데...

영의정도 한끗발 하잖아요..

계속 왕한테 달라듭니다...

결국 살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자식이 칠거지악 비슷한 이유를 대서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게 대표적 사례이고 대부분 화냥녀의 신세가 이와 비슷하였습니다...

 

산으로 올라가 숨어 살거나...

목을메어 자결하거나...

아무튼 조선시대 남자들만큼 무능무지한  시대도 없었다 싶습니다...

지금 이태원이 외국인이 많은게 우연의 일치일까요...

 

참으로 슬픈 우리의 과거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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