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군사제도(대략~^^)
컨텐츠 정보
- 49 조회
- 0 추천
- 목록
본문
봉건국가에서는 외침을 막는일도 중요하지만...
내란이 끊임이 없었고 특히 왕권쟁탈을 위해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빈번하여...
국경수비보다 오히려 왕궁의 군사력이 훨씬 강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크래프트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네요...
고려시대 무신정권이후 사병제도가 흔들리다가...
다시 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반란이후...
굳건하게 자리를 잡습니다...(비록 잠시지만...)
일단 정권을 잡는데 성공을 했는데???
도리어 이제 이게 무서워집니다...(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이성계나..ㅎㅎ)
그리하여 조선 건국 이후 정도전이란 자가 사병제도를 철폐하고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무진장 노력을 하던중...
태조 이성계의 여섯째 아들 방원(3대왕 태종)이가 눈엣가시로 여기고 제거하여 잠시 중단...컷~~!!
허나 방원이도 정적을 제거 하였으니 이 제도에는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구요...
그리하여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군사체제를 다시 정비하게 되는데...
이리하여 조선 초기 (아마 정종때 일일 것입니다...허수아비 왕...)5위라는 제도를 확립하는데...
의흥위, 용양위, 충무위, 충좌위,...에 또하나가 뭐더라?? 암튼 다섯개...
주 병력은 직업군인이라 할수 있는데 "취재" 라고 하는선발 시험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충무공 이순신을 생각하고 호남이 충무위라고 할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충무위는 함경도 일대 관할 이었습니다..
조선 초기 신분제는 양인제(양반과 평민 ) 이 한가지 였고...
평민만 군역의 의무가 있었습니다...(후에 4계급으로 변천합니다...중인과 천민이 생겨서...)
그러다가 세조때 진관체제란 군제를 성립하는데요...
세부내용은 읽어봐야 또 알아봐야 머리 아프니 생략을 하고...
아무튼 이 조선사람들... 돈을 밝혀서 큰 일입니다...ㅠ.ㅠ
군역을 대신치르신 대역군인이 생겨나는데...(면포..한마디로 옷감을 주어서 예비군 대리훈련처럼 대신 보냈습죠^^)
나라 관리들이 동참하여서 이지경이 되었답니다...
이때 다행히도 외침이 없어서 망정이지 만약 일본이나 명에서 침략했으면 조선은 이때 망했을지도 모르지요...
이후에 16세기 들어서 제승방략제도가 도입되는데...
얼른 말하자면...
동네 사또가 파발이 오면 지들 똘마니 포졸들 데리고 집결해~~!! 라고 하는 곳에 가서 대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중앙정부 즉..한양이나 뭐 관찰사 등 이런 지휘관이 내려올때까정 기다리는데...
이거 상식적으로 별로 안좋은 체제입니다...
지휘관 오기전에 적이 먼저오면 어찌되겠습니까...
테란 벙커짓고 있는데 저글링이 와서 싹 슬어버리는 꼴이죠 뭐...
또한 사또들이야 다 고만고만 하기때문에 서로가 누가 누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테고...
저쪽에서 적이온다..이리로 모여라......!!!
이러면 다른 사또가 미친 쉐이가 웃기고 있네..내가 니말을 왜들어..같은 끝발인데..그리고...너 사또 몇기야 .?? 임마...
뭐 이런거 아니겠습니까...ㅎㅎ
근데 불행하게도 사실은 대부분 지휘관보다 적이 먼저왔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때 그 짧은 시간에 왜군이 한양까지 밀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구요...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당시 지도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어떻게 그렇게 동서남북을 잘 찾아 올라왔을까요??...
부끄러운 우리 역사지만...
왜군의 앞잡이를 조선인이 했다는 것입니다...(더 자세히는 말 못하것네요...에효~~)
뭐 6.25 때도 완장 찬 거시기들 있었지만..음음...헛~~!!
혹시 예전 허준이란 드라마 보신적 있는분...??(거기서도 아래 이야기가 한 장면으로 나온다)
임진왜란 전까지 평민이나 천민들은 양반들이 무슨 큰 힘이 있어서 자신들에게 억압을 주는줄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나도 당연히 양반님들이 알아서 잘..막아줄걸로 철저히 믿었겠지요...
근데 왠걸??? 전쟁 나니 양반놈들이 맨먼저 보따리 싸서 도망을 가네요...(일명 후다닥~~~)
그래서 피난길에 양반들은 평민이하들 에게 많이 테러를 당하기도 합니다...(특히 돌팔매질)
맞아죽은 사람도 제법 있었던 걸로...
일부러 평민 복장으로 달아난 이들도 이런 이유로 많았답니다...
왕이 저~~~꼭대기 의주까지 도망갔다가 어찌어찌 명나라 원병이 구원투수로 나타나 다시 한양에 왔으니...
누가 인정을 해주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놈의 대신들은 한양에 당도하자마자...
논공행상을 시작합니다...지들이 한게 뭐가 있다고...
(제가 조선 역사중 가장 싫어하는 게 이대목 입니다...)
참...군역의 의무는 열여섯살부터 환갑까지 였는데 호패의 나이로 정했습니다...
천민도 군은 면제였구요...
한마디로 상민(평민)만 죽어났지요 뭐...(어찌 요즘과 이렇게 다를바가 없을까요...평범한 가정만 군대를 가니 원...)
물론 양반도 규정상 현직관료는 제외하고 전직 3품 이하는 군역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꾸라지마냥 이래저래 핑계로 군역을 하지 않지요..ㅎㅎㅎㅎㅎ.
이러다보니 신분제는 다떨어져가는 팬티 고무줄처럼 점점.. 느슨해지고...
조선 중후기 들어 상공업이 점차 발달하면서 양반직을 사고파는 행위가 암암리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조상이 양반입네 뭐네 따지지마세요...아닐 확률도 많습니다...ㅎㅎㅎ)
임진왜란 당시 훈련도감이란 것을 만들고...
그 이후로 뭐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 장용영 포도청...등등 이딴거 만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외침보다는 왕권강화를 위해 만들었다고 봐야 맞을것 같습니다...
지금 나라 꼬락서니를 보니...
그때 붕당정치했던 사람들 소 되새김질 하는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네요...
어째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이모양일까요...???
내란이 끊임이 없었고 특히 왕권쟁탈을 위해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빈번하여...
국경수비보다 오히려 왕궁의 군사력이 훨씬 강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크래프트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네요...
고려시대 무신정권이후 사병제도가 흔들리다가...
다시 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반란이후...
굳건하게 자리를 잡습니다...(비록 잠시지만...)
일단 정권을 잡는데 성공을 했는데???
도리어 이제 이게 무서워집니다...(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이성계나..ㅎㅎ)
그리하여 조선 건국 이후 정도전이란 자가 사병제도를 철폐하고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무진장 노력을 하던중...
태조 이성계의 여섯째 아들 방원(3대왕 태종)이가 눈엣가시로 여기고 제거하여 잠시 중단...컷~~!!
허나 방원이도 정적을 제거 하였으니 이 제도에는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구요...
그리하여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군사체제를 다시 정비하게 되는데...
이리하여 조선 초기 (아마 정종때 일일 것입니다...허수아비 왕...)5위라는 제도를 확립하는데...
의흥위, 용양위, 충무위, 충좌위,...에 또하나가 뭐더라?? 암튼 다섯개...
주 병력은 직업군인이라 할수 있는데 "취재" 라고 하는선발 시험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충무공 이순신을 생각하고 호남이 충무위라고 할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충무위는 함경도 일대 관할 이었습니다..
조선 초기 신분제는 양인제(양반과 평민 ) 이 한가지 였고...
평민만 군역의 의무가 있었습니다...(후에 4계급으로 변천합니다...중인과 천민이 생겨서...)
그러다가 세조때 진관체제란 군제를 성립하는데요...
세부내용은 읽어봐야 또 알아봐야 머리 아프니 생략을 하고...
아무튼 이 조선사람들... 돈을 밝혀서 큰 일입니다...ㅠ.ㅠ
군역을 대신치르신 대역군인이 생겨나는데...(면포..한마디로 옷감을 주어서 예비군 대리훈련처럼 대신 보냈습죠^^)
나라 관리들이 동참하여서 이지경이 되었답니다...
이때 다행히도 외침이 없어서 망정이지 만약 일본이나 명에서 침략했으면 조선은 이때 망했을지도 모르지요...
이후에 16세기 들어서 제승방략제도가 도입되는데...
얼른 말하자면...
동네 사또가 파발이 오면 지들 똘마니 포졸들 데리고 집결해~~!! 라고 하는 곳에 가서 대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중앙정부 즉..한양이나 뭐 관찰사 등 이런 지휘관이 내려올때까정 기다리는데...
이거 상식적으로 별로 안좋은 체제입니다...
지휘관 오기전에 적이 먼저오면 어찌되겠습니까...
테란 벙커짓고 있는데 저글링이 와서 싹 슬어버리는 꼴이죠 뭐...
또한 사또들이야 다 고만고만 하기때문에 서로가 누가 누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테고...
저쪽에서 적이온다..이리로 모여라......!!!
이러면 다른 사또가 미친 쉐이가 웃기고 있네..내가 니말을 왜들어..같은 끝발인데..그리고...너 사또 몇기야 .?? 임마...
뭐 이런거 아니겠습니까...ㅎㅎ
근데 불행하게도 사실은 대부분 지휘관보다 적이 먼저왔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때 그 짧은 시간에 왜군이 한양까지 밀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구요...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당시 지도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어떻게 그렇게 동서남북을 잘 찾아 올라왔을까요??...
부끄러운 우리 역사지만...
왜군의 앞잡이를 조선인이 했다는 것입니다...(더 자세히는 말 못하것네요...에효~~)
뭐 6.25 때도 완장 찬 거시기들 있었지만..음음...헛~~!!
혹시 예전 허준이란 드라마 보신적 있는분...??(거기서도 아래 이야기가 한 장면으로 나온다)
임진왜란 전까지 평민이나 천민들은 양반들이 무슨 큰 힘이 있어서 자신들에게 억압을 주는줄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나도 당연히 양반님들이 알아서 잘..막아줄걸로 철저히 믿었겠지요...
근데 왠걸??? 전쟁 나니 양반놈들이 맨먼저 보따리 싸서 도망을 가네요...(일명 후다닥~~~)
그래서 피난길에 양반들은 평민이하들 에게 많이 테러를 당하기도 합니다...(특히 돌팔매질)
맞아죽은 사람도 제법 있었던 걸로...
일부러 평민 복장으로 달아난 이들도 이런 이유로 많았답니다...
왕이 저~~~꼭대기 의주까지 도망갔다가 어찌어찌 명나라 원병이 구원투수로 나타나 다시 한양에 왔으니...
누가 인정을 해주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놈의 대신들은 한양에 당도하자마자...
논공행상을 시작합니다...지들이 한게 뭐가 있다고...
(제가 조선 역사중 가장 싫어하는 게 이대목 입니다...)
참...군역의 의무는 열여섯살부터 환갑까지 였는데 호패의 나이로 정했습니다...
천민도 군은 면제였구요...
한마디로 상민(평민)만 죽어났지요 뭐...(어찌 요즘과 이렇게 다를바가 없을까요...평범한 가정만 군대를 가니 원...)
물론 양반도 규정상 현직관료는 제외하고 전직 3품 이하는 군역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꾸라지마냥 이래저래 핑계로 군역을 하지 않지요..ㅎㅎㅎㅎㅎ.
이러다보니 신분제는 다떨어져가는 팬티 고무줄처럼 점점.. 느슨해지고...
조선 중후기 들어 상공업이 점차 발달하면서 양반직을 사고파는 행위가 암암리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조상이 양반입네 뭐네 따지지마세요...아닐 확률도 많습니다...ㅎㅎㅎ)
임진왜란 당시 훈련도감이란 것을 만들고...
그 이후로 뭐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 장용영 포도청...등등 이딴거 만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외침보다는 왕권강화를 위해 만들었다고 봐야 맞을것 같습니다...
지금 나라 꼬락서니를 보니...
그때 붕당정치했던 사람들 소 되새김질 하는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네요...
어째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이모양일까요...???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